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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vasMe-Once Upon Campus

3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편지

by 서창옥 : 전자공학자 2026. 7. 17.



대학 시절 나는 학과와 관계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중앙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동아리에는 문과, 공과대학, 미술대학, 어문대학 등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함께했다. 전공은 달랐지만 함께 MT를 가고, 축제를 준비하고,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선후배 이상의 가족 같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 가장 소중한 추억은 대부분 그 동아리에서 만들어졌다.

그 많은 후배들 가운데 한 명의 여자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는 공과대학 학생이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공부도 잘했고, 늘 예의가 바른 학생이었다.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따뜻함이 있었고, 꾸미지 않아도 단아하고 이쁜 후배였다.

어느 날 여러 선후배들이 함께 동아리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후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배.”

“응?”

“선배한테 편지 보냈는데 읽어봤어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아니, 아직 도착 안 했는데.”

후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도착하면 꼭 읽어보고 답변해 주세요.”

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뭐라고 썼는데?”

후배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읽어봐요.”

나는 괜히 긴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긴장되는데.”

후배는 웃으며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요. 선배가 느끼는 그대로일 거예요.”

그 말을 듣자 오히려 더 긴장됐다.

그래서 웃으며 말했다.

“안 읽을래.”

후배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왜요?”

“읽으면 안 될 것 같아.”

내게는 별생각 없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후배의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후 후배의 눈에 눈물이 맺히더니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왜? 내가 뭐 잘못했어?”

후배는 울먹이며 말했다.


“선배는 제 성의를 왜 무시해요?”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러 후배들 가운데 한 명이 나를 보며 말했다.

“형이 잘못했네.”

다른 후배도 한마디 했다.

“형도 참…”

하지만 아무도 무엇이 잘못인지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결국 울고 있는 후배를 달래 주느라 한참을 애썼다.

“미안하다.”

“정말 그런 뜻은 아니었어.”

하지만 그때도 나는 왜 미안해야 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 모두 졸업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

나도 바쁘게 살아왔고, 후배들도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후배는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이 마음에 남는다.

후배는 분명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편지는 끝내 내게 도착하지 않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혹시 그 편지는 아직 보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후배는 편지를 다 써 놓고 먼저 내 반응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선배, 편지 보냈는데 읽어봤어요?”

내가 “기다리고 있었어. 빨리 읽어볼게.“라고 대답했다면 안심하고 우체통에 넣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는 읽어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안 읽을래.”

그 한마디에 후배는 자신의 진심이 거절당했다고 느꼈고, 결국 그 편지는 우체통으로 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내 추측일 뿐이다.

그날 후배가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는지, 편지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정말 편지를 보내려 했던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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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누군가가 어렵게 건네는 마음은 내용보다 먼저 그 마음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편지이든, 한마디 말이든, 작은 선물이든, 그 안에는 오랫동안 망설이며 담아 온 진심이 들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날의 동아리방이 떠오른다.

여러 선후배들이 함께 웃고 이야기하던 그 공간.

수줍게 다가와 말하던 후배.

“선배, 편지 보냈는데 읽어봤어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대답했던 나.

“안 읽을래.”

그날 후배의 눈물의 진짜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꼭 알지 못해도 될 것 같다.

그 후배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내 마음속에는 작은 바람 하나가 남아 있다.

만약 시간이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빨리 읽어볼게. 고마워.”

그 한마디만 했어도, 그날의 눈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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