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에서의 저녁
오늘은 대학 후배와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며칠 전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 나 유학 가.”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진짜?”
“응. 다음 달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유학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부터 해외에서 공부해 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던 후배였다. 하지만 막상 출국 날짜까지 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보다 실감이 났다.
“가기 전에 밥 한번 먹자.”
“좋지.”
그렇게 약속이 잡혔다.
장소는 왕십리 한양대 앞 카페였다.
그날은 연구실에서 논문 자료를 정리하다가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왔다. 창밖을 보니 초여름 햇살이 건물 사이로 비치고 있었다. 며칠째 이어지던 더위도 잠시 주춤한 날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왕십리역에 도착했다.
퇴근 시간과 겹쳐 역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역에서 나와 한양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대학가 특유의 분위기는 언제 와도 반가웠다. 카페 앞에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식당에서는 저녁 손님을 맞고 있었다. 웃음소리와 대화 소리가 거리 곳곳에서 들려왔다.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빨랐다.
창가 자리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카페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후배였다.
후배는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일찍 왔네.”
“너도 안 늦었네.”
“오늘은 특별히.”
후배는 웃기만 했다.
몇 달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예전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 것 같았지만 웃는 모습은 여전했다.

음료를 주문한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였다.
학교 이야기.
학과 이야기.
아는 교수님들 이야기.
요즘 학생들 이야기.
“요즘 학교 가면 신기하지 않아?”
후배가 말했다.
“뭐가?”
“학생들 보면 다 어리게 보여.”
“그건 우리가 나이를 먹은 거야.”
“그치.”
둘 다 웃었다.
카페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처음 후배를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신입생 티가 가득 나던 시절이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했고 질문도 많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후배는 많이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 해외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는 다 끝났어?”
내가 물었다.
“거의.”
“비자는?”
“나왔어.”
“집은?”
“구했어.”
“생각보다 철저한데?”
후배는 웃었다.
“근데 짐 정리가 제일 힘들어.”
“원래 그게 제일 힘들지.”
“버려도 버려도 안 줄어.”
“ㅋㅋ.”
잠시 후 후배가 조용히 말했다.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해.”
“뭐가?”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싶어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안 무서우면 이상한 거야.”
후배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
“당연하지.”
“선배도 그런 적 있었어?”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할 때마다.”
“그렇구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창밖으로 노을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주황빛 햇살이 카페 창문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기대되긴 해.”
후배가 말했다.
“뭐가 제일 기대돼?”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거.”
“좋네.”
“그리고 가보고 싶었던 곳들.”
“그럼 된 거지.”
“뭐가?”
“기대가 걱정보다 크잖아.”
후배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카페에서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을 주문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유학지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졸업 후 진로.
공부하고 싶은 분야.
후배는 자신의 꿈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왕십리역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어느새 해는 완전히 지고 있었다.
초여름 밤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역 입구가 가까워졌을 때 후배가 말했다.
“선배.”
“응?”
“오늘 나와줘서 고마워.”
“별말을.”
“가기 전에 한번 보고 싶었어.”
나는 웃었다.
“잘 다녀와.”
“응.”
“건강하고.”
“알겠어.”
“가서 힘들어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역사 입구 앞에 도착했다.
후배는 가방 끈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가서도 연락할게.”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후배는 웃으며 말했다.
“선배.”
“왜?”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와.”
후배는 환하게 웃은 뒤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학교.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시간들.
이제 후배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문득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모두가 앞으로 무엇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만남도 있는 것이다.
몇 년 뒤 후배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오늘의 이야기를 함께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왕십리 한양대 앞 카페.
초여름의 저녁.
유학을 앞둔 후배.
그리고 그 출발을 응원하던 한 사람.
오늘의 저녁은 그렇게 조용히 기억 속에 남아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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