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공과대학 학생들에게는 꼭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대회가 있었다. 서울대학교에서 개최하던 마이크로마우스(Micro Mouse) 대회였다.

작은 자율주행 로봇이 복잡한 미로를 스스로 탐색하여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중앙의 목표 지점에 도착하는 경기였다. 지금처럼 인공지능(AI)이 누구에게나 익숙한 시대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예제를 찾아볼 수도 없었고, 오픈소스도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고민하고 설계하며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이 대회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공학도들의 창의력과 실력을 겨루는 무대였다.
우리 동아리도 대회 참가를 위해 마이크로마우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학이라는 것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전공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배웠다.
기계공학과 학생들은 학과 실습실에서 조교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공작기계를 사용했다. 알루미늄을 가공해 차체를 만들고, 작은 프레임 안에 모터와 기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직접 메커니즘을 설계했다.
전자공학과 학생들은 학과 실험실에서 오실로스코프와 각종 계측기를 빌려와 동아리방에서 회로를 설계하고 테스트했다. 납땜을 하고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다시 측정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센서 하나, 저항 하나에도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외관 디자인은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맡았다. 디자인 툴을 이용해 외형을 설계하고 직접 샘플을 제작해 작은 마우스의 모습을 완성했다.
그렇게 여러 학과 학생들의 노력 끝에 작고 깜찍한 마이크로마우스가 완성되었다.
드디어 테스트하는 날이 찾아왔다.
미로의 출발점에 마우스를 올려놓고 스위치를 눌렀다.
마우스는 벽을 감지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갈림길에서는 잠시 멈춰 방향을 판단했고, 막다른 길에서는 돌아 나왔다. 센서는 제대로 동작했고 프로그램도 예상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길은 잘 찾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느렸다.

대회에서는 결국 기록이 중요했다. 아무리 정확하게 미로를 찾아도 속도가 느리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을지 밤늦도록 토론했다.
그 무렵 같은 전자공학과 친구 한 명이 찾아왔다.
“나도 하나 만들었는데 한번 볼래?”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전자공학을 정말 좋아하던 친구였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밤을 새워 직접 만들어 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칠판 앞으로 가더니 분필을 들었다.
“서울대 미로 같은 건 필요 없어.”
우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벽을 따라 여러 개의 초음파 센서를 배치한 구조를 그리기 시작했다.
“최고 속도로 달리면서 벽과의 거리를 계속 측정해. 코너가 가까워지는 것을 미리 알면 회전하기 전에 감속하고 방향을 준비할 수 있어.”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초음파 센서를 여러 방향으로 배치해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신호의 변화를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설명만 들어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며칠 뒤 그는 직접 만든 마우스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후배들과 선배들까지 함께 공대 건물 복도로 모였다.
그가 만든 마우스는 외형은 투박했다.
우리 것이 훨씬 예뻤다.
하지만 그는 외형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오직 성능만이 중요하다는 엔지니어다운 모습이었다.
그는 바닥에 마우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작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이었다.
마우스가 엄청난 가속으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우리가 만들었던 마우스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속도였다.
복도를 거의 미끄러지듯 최고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
“엄청 빠르다.”
“저 정도면 대상감인데.”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우리가 만들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었다.
한참을 최고 속도로 달리던 마우스를 바라보며 모두 숨을 죽였다.
친구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제 봐. 코너가 나오면 어떻게 회전하는지.”
모두의 시선이 복도 끝을 향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코너가 가까워져도 마우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감속도 하지 않았고 방향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없었다.
순간 모두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쾅!
엄청난 충돌음과 함께 마우스는 벽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속도가 문제였다기보다 센서의 접점 불량이나 순간적인 신호 오류가 있었던 것 같았다.
코너를 인식하지 못한 마우스는 그대로 벽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작은 몸체는 산산조각이 났다.
기판은 튀어나가고 바퀴는 다른 방향으로 굴러갔으며 부품들은 복도 곳곳으로 흩어졌다.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달려가 마우스의 잔해를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충돌한 탓에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복도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조금 전까지 환호하던 선배와 후배들도 아무 말이 없었다.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역시 그 친구였다.
그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실패해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고민하며 만들었던 자신의 꿈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공학에서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실패한 실험 하나가 성공한 열 번보다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남기기도 한다.
그 친구의 마우스도 그랬다.
비록 마지막에는 벽에 부딪혀 부서졌지만, 나는 아직도 그날의 가속을 잊지 못한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앞선 생각을 하고 있었고, 누구보다 과감한 도전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으로 갔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서울에 올 때마다 만나 식사를 하며 전자공학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야기해 주었다.
언제나 눈빛은 대학 시절 그대로였다.
전자공학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겼다.
전화번호도 바뀌었고 동문 명부에도 연락처가 남아 있지 않았다.
몇 번이나 찾아보았지만 끝내 소식을 알 수 없었다.
가끔은 그날 복도를 전속력으로 달리던 작은 마우스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뒤를 말없이 뛰어가 흩어진 부품을 하나씩 주워 담던 친구의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인공지능이 길을 찾고, 작은 개발 보드 하나로도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공학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직접 만들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도전 정신이야말로 공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그 친구는 누구보다 전자공학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 여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내게 마이크로마우스 대회는 단순한 로봇 경기가 아니었다.
젊은 공학도들이 자신의 꿈을 담아 달리던 무대였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복도를 전속력으로 달리던 그 작은 마우스와 한 친구의 빛나던 열정을 잊지 못한다.
'CanvasMe-Once Upon Camp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3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편지 (0) | 2026.07.17 |
|---|---|
| 동아리 후배들 (0) | 2026.07.04 |
| 대학 후배 유학 (0) | 2026.06.25 |
| 대학시절 동아리 (0) | 2026.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