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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vasMe-Once Upon Love

세종문화회관 뒷골목

by 서창옥 : 전자공학자 2026. 6. 6.

버스를 놓친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우리는 바로 택시를 잡지 않았다.

광화문 사거리 쪽으로 나가면 택시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발걸음은 이상하게 느렸다.

마치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헤어지는 시간을 조금씩 뒤로 미루고 있는 것 같았다.

세종문화회관 뒤편 골목길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늦은 밤이었다.

가로등 불빛만 조용히 길을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걸었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몇 시간 전 카페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손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손을 놓기가 싫어졌다.

그녀도 같은 마음인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을 내 손 사이로 더 깊숙이 끼워 넣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조금 전 카페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대화보다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가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내가 쳐다보는 것을 느끼면 웃어 주었다.

그 웃음 하나면 충분했다.

몇 시간 동안 카페에 앉아 있었던 이유도 결국 그 웃음을 보고 싶어서였는지 몰랐다.

길 한쪽에 서 있던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늦은 밤의 공기는 서늘했지만 이상하게 춥지 않았다.

그녀가 곁에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갑자기 내 어깨에 살짝 기대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심장은 괜히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피곤해?”

내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그냥.”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굳이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냥 이렇게 걷고 싶었다.

그냥 옆에 있고 싶었다.

그냥 오늘 밤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골목 끝이 가까워질수록 현실이 다가왔다.

조금만 더 가면 큰길이었다.

택시를 잡아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일은 또 학교에 가야 했고 그녀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걸음을 멈춘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평소에도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밤의 모습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변은 너무 조용해서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니 처음 만났던 날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한순간에 떠올랐다.

처음 인사를 나누던 순간.

함께 웃었던 순간.

사소한 일로 토라졌던 순간.

다시 화해했던 순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그 모든 시간이 그녀의 눈동자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손은 여전히 맞잡고 있었다.

서로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입맞춤을 하는 순간 시간은 다시 멈춘 것 같았다.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조용한 골목.

늦은 밤의 차가운 공기.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오직 그녀만 느껴졌다.

한참 뒤 입술이 떨어졌을 때 그녀는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리고 내 가슴에 살짝 기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도 아무 말이 없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진짜 택시 타러 가야겠다.”

나는 웃었다.

“그러게.”

하지만 우리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한 채 한참 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그 밤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훗날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는 그 밤을 잊지 못했다.

세종문화회관 뒤편 골목길.

막차를 놓친 밤.

택시를 타러 가던 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었던 조용한 입맞춤.


그날의 기억은 오래된 사진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희미해질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그날 밤 우리는 단순히 키스를 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말없이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