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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vasMe-Once Upon Love

공중전화

by 서창옥 : 전자공학자 2026. 7. 4.

저녁 8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집 근처 공중전화로 향했다. 그 시절에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이 지금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없었고, 상대방이 집에 있는 시간을 짐작해 전화를 걸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상대의 생활 패턴을 알게 되었고, 전화 한 통에도 기다림과 설렘이 담겨 있었다.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전화를 받은 사람은 평소처럼 유경이 어머님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조금 앳된 목소리였다.

“유경이 친구인데요. 유경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저 소희인데요. 언니 학교에서 아직 안 왔어요. 언니 오면 전화드리라고 할까요.“

유경이의 여동생 소희였다. 몇 번 통화 한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었다.

“소희 씨는 잘 지내시죠?”

“예. 잘 지내요.”

“언니랑 같이 시간 되시면 같이 밥 한번 먹을까요?.”

잠시 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예!”

“저는 언제든 괜찮은데요. 두 분이 항상 바쁘신 것 같아서요.”

“그런가요? 하하.”

사실 바쁘다고 할 만큼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로 학교 생활을 하고, 각자의 일정을 보내다 보면 시간이 신기하게도 잘 맞지 않았다. 만나려고 하면 한쪽은 수업이 있었고, 다른 한쪽은 약속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만남 하나도 서로 시간을 맞춰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언니 오면 전화 왔었다고 말해주세요.”

“예.”

“안녕히 계세요.”

“네.”

전화를 끊고 수화기를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공중전화를 나와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집까지는 약 15분 정도 걸렸다. 여름도 겨울도 아닌 적당한 계절이라 걷기에 좋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조용한 골목길을 걸으며 오늘은 유경이를 만나지 못했지만 곧 다시 통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유경이한테 전화 왔었다.”

“예”

나는 시계를 보았다. 밤 9시.

다시 집 전화기로 유경이 집 번호를 눌렀다.

우리 집 전화는 조금 특이했다. 거실과 내 방에 각각 전화기가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쪽에서든 받을 수 있었다. 가족이 거실에서 통화하면 내 방에서도 소리가 들렸고, 내가 방에서 통화하면 거실에서도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생활은 거의 없었지만, 당시에는 흔한 방식이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유경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응.”

“오늘 소희랑 통화했다며.”

“응.”


“밥 같이 먹자고 했다면서..“

유경이가 웃었다.

“응.”

“그런데 우리가 너무 바빠서 시간 내기 어렵다고 했다고 하더라. 소희는 아무 때나 좋데...”

“응 .  소희씨랑 같이 밥먹자.”

정말 그랬다.

https://youtube.com/shorts/wMPPVrxdseY?si=wue5-5DdAqUbqBfu

 

hey j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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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도 달랐고, 각자 해야 할 일도 있었다. 그래서 1주일에 한번, 시간이 맞는 날 잠깐 만나 함께 걷거나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래”

짧은 대화였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우리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는 연인이 아니었다. “내일 몇 시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자.” 같은 약속보다 “시간 되면 보자.“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웠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약속해도 결국은 시간을 맞춰 만나게 되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연락이 닿지 않는 일도 흔했다. 누군가의 집에 전화를 걸어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와 먼저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자연스러운 예의였다. 상대 가족과도 조금씩 안면을 익히고, 가끔은 안부를 묻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시간도 생겼다.

지금처럼 문자 한 줄로 끝나는 관계와는 조금 달랐다. 한 통의 전화에는 기다림이 있었고, 한 번의 통화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상대가 집에 없으면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고, 혹시 통화를 놓칠까 봐 약속한 시간에는 집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불편한 시대였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과 연락 한 번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유경이와 나눈 짧은 통화도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서로의 하루를 확인하고, 함께 웃고, 다음 만남을 자연스럽게 기대하는 것. 그 소박한 일상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큰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