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이가 서울랜드에 가자고 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이번 주말에 시간 돼?”
“왜?”
“서울랜드 가자.”
나는 순간 웃었다.
“놀이공원?”
“응.”
“좋아 가자”
나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러자고 했다. 사실 놀이공원은 오랜만이었다. 어릴 때 몇 번 가본 기억은 있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경이와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굳이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약속한 날 아침, 우리는 전철을 타고 과천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경이는 평소보다도 더 들떠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가벼워졌다. 그녀가 옆에 있으면 별것 아닌 하루도 괜히 조금 특별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 바이킹 꼭 탈 거야.”
“그래?”
“엄청 재미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바이킹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무서워 보였다. 거대한 배가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심장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괜히 겁먹은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특히 유경이 앞에서는 더 그랬다. 그녀가 웃을까 봐서가 아니라,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을 여주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듬직하게 유경이 곁을 지켜주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범퍼카나 타고 싶은데.”
“범퍼카는 나중에.”
유경이는 내 의견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런데 그 무시가 전혀 밉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이렇게 자기 속도로 사람을 끌고 가는 사람. 그런데도 이상하게 억지스럽지 않은 사람.
서울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유경이는 신이 난 아이처럼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장 바이킹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걸어간 것이 아니라 내 손을 잡고 끌고 갔다.
그 순간 나는 괜히 손끝에 신경이 쏠렸다. 유경이의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잡힌 손목 쪽으로 묘하게 힘이 전해졌다. 별일 아닌데도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아마 놀이기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빨리 와.”
“천천히 가도 안 도망가.”
“도망갈 것 같은데?”
유경이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꽤 있었다. 하지만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더 태연한 척 걸었다. 유경이는 그런 내 속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그게 오히려 더 유경이다웠다.
바이킹 앞에 도착한 유경이는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제일 끝에 타자.”
“왜?”
“거기가 제일 재미있거든.”
나는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살아서 집에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는 제일 끝자리에 앉았다.

안전바가 내려오고 바이킹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앞뒤로 살짝 흔들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점점 높이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배가 거의 수직으로 올라갔다.
그 순간 아래를 내려다본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와… 이건 아니지.’
다음 순간.
휙.
엄청난 속도로 아래로 떨어졌다.
배 속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목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옆을 보니 유경이는 양손을 들고 있었다.
“와아아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가 너무 밝아서, 잠깐은 무서움보다도 그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손가락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지만, 유경이는 마치 바람을 타는 것처럼 가볍게 웃고 있었다.
몇 분 후 바이킹이 멈췄다.
땅에 발을 디디자 비로소 살아 있다는 실감이 났다. 다리가 아주 조금 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그런 내 상태를 유경이가 모를 리 없을 텐데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고마웠다. 괜히 “무서웠다”고 말할 틈도 주지 않는 배려 같아서.
유경이가 웃으며 물었다.
“재밌지?”
“그럼. 재밌네.”
“어땠어?”
“근데 좀 시시한데?”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유경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래? 그럼 청룡열차 타자.”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방금 전까지는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가 괜히 허세를 부린 탓에 더 큰 걸 자초한 느낌이었다. 유경이는 내 표정을 보고도 모른 척 웃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겁먹은 것도, 괜히 센 척한 것도.
“유경아 배 안 고파?”
“안 고파.”
“커피 마실래?”
“나중에.”
“산책할까?”
“청룡열차 먼저.”
나는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유경이는 내 손을 잡았다.
“이리 와.”
그리고 나를 청룡열차 앞으로 끌고 갔다.
그 손길이 이상하게도 단호하면서 다정했다. 도망칠 틈을 주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무섭지 않게 데려가려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유경이가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겁먹을까 봐, 혹은 중간에 망설일까 봐, 아예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런 배려가 꼭 말로 드러나는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탑승이 시작되었다.
열차는 천천히 언덕을 올라갔다.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올라갈수록 아래 풍경이 작아졌다.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반면 유경이는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 옆얼굴을 힐끗 보는데, 괜히 마음이 조금 이상해졌다. 무서운 상황인데도 그녀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덜 불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걸 안심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유경이라서 그런 걸까.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쏜살같이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아아!”
주변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엄청난 속도로 내려가더니 곧바로 회전했다.
왼쪽으로 꺾이고.
오른쪽으로 비틀리고.
다시 위로 치솟았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눈앞의 풍경이 정신없이 바뀌었다.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절대로 무서운 표정을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유경이에게 들킬 수는 없었다. 그런데 사실은 이미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옆에서 웃고 있는 동안, 나는 그 웃음소리에 기대어 겨우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유경이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다정하게 느껴졌다.
몇 분 후 열차가 멈췄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경이가 웃으며 물었다.
“너도 재밌지?”
“탈만하네.”
“진짜?”
“다음에 와서 또 타고 싶다.”
유경이는 깔깔 웃었다.
“그래? 의외네.”
“왜?”
“무서워할 줄 알았거든.”
“내가?”
“응.”
“전혀.”
나는 끝까지 태연한 척했다.
그렇게 놀이기구들을 몇 개 더 구경한 뒤 우리는 사당동 카페거리로 향했다.
그곳은 우리 둘에게 익숙한 장소였다.
예전에 유경이와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일이 끝난 뒤 직원들과 자주 오던 곳이었다. 나 역시 몇 번 함께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유경이는 늘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편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거리는 여전히 활기찼다.
우리는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따뜻한 음식이 들어가니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 후 조용한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안쪽 구석 자리에 앉은 우리는 커피를 주문했다.
창밖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유경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갑자기 말했다.
“근데.”
“응?”
“오늘 무서웠지?”
나는 바로 대답했다.
“아니. 전혀 안 무서웠어.”
유경이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내 손을 엄청 꼭 잡던데?”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건…”
“응?”
“네가 무서울까 봐.”
“내가?”
“안정되라고 잡아준 거지.”
유경이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럼.”
“정말?”
“당연하지.”

유경이는 한참 동안 웃었다.
나는 괜히 커피만 마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좋았다. 들킨 것 같아 민망해야 할 순간인데도, 오히려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 유경이가 내 거짓말을 모른 척 받아준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믿어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괜찮았다. 그녀가 웃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마 유경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이킹이 무서웠다는 것도.
청룡열차를 타며 긴장했다는 것도.
그런데도 모르는 척해 준 것 같았다.
그것이 유경이다.
상대가 민망하지 않게 해주는 사람.
괜히 놀리면서도 끝까지 배려해 주는 사람.
그리고 그런 유경이를 보고 있으면, 나는 자꾸만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들켜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이 이상하게 함께 있었다. 아마 그래서 더 오래 그녀를 바라보게 되는지도 몰랐다.
카페를 나왔을 때는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노을빛이 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역 쪽으로 걸어갔다.
유경이는 오늘이 정말 즐거웠다고 말했다.
나 역시 즐거웠다.
비록 놀이기구를 타는 동안 심장이 몇 번이나 멎는 줄 알았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오늘의 무서움은 오래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유경이가 내 손을 잡아끌던 감각이나, 바이킹 위에서 웃던 얼굴,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내 겁을 덮어주던 태도 같은 것들이 더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전철을 기다리며 플랫폼에 나란히 서 있었다.
유경이가 말했다.
“다음에는 더 무서운 것도 타자.”
나는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곧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유경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 팔짱을 끼었다.
그 순간 아주 잠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팔에 닿은 온기가 생각보다 가까워서, 괜히 시선 둘 곳을 찾게 됐다. 그런데도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짧은 접촉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조금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전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 하루의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따뜻했다.
서울랜드에서의 하루.
무서운 놀이기구와 수많은 비명, 그리고 유경이의 웃음소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웃음은 오래도록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가 단지 재미있어서만은 아니라는 걸,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경이가 내 겁을 알아채고도 끝까지 모른 척해 준 다정함이, 생각보다 훨씬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날 밤 나는 아마 꽤 오래도록, 그녀가 잡아주던 손의 온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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