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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vasMe-Once Upon Love

유경이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by 서창옥 : 전자공학자 2026. 7. 9.

그날 저녁 9시쯤이었다.

유경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잠깐 나와 줄 수 있어.”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차분했지만 무언가 힘겨운 기색이 느껴졌다.

“무슨 일 있어?”

“남자친구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좀 와 줘.”

나는 곧바로 집을 나와 유경이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https://youtube.com/shorts/v1rr7Kxw-wM?si=g3xeEqsRgMoEtC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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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도착하니 유경이와 한 남자가 가로등 아래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유경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안도하는 표정이었지만 동시에 불안함도 묻어 있었다.

남자는 나를 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직 군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듯 자세가 반듯했고 말투도 공손했다.
나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그도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악수를 나눈 뒤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유경이와 동갑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훈씨는 군대에 가기 전 약 6개월 정도 유경이와 친구처럼 지냈다고 했다.

“휴가를 나왔을 때 유경이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말에는 꾸밈이 없었다.

잠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정훈씨가 말했다.
“유경이 네가 우리 두사람 앞에서 말해봐.”

나는 유경이를 바라보며.  “그래. 그게 맞는 것 같아. 네 가 말해봐.”

순간 유경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를 바라보던, 크고 맑은 눈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

유경이는 나를 만나면서 그렇게 크게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분노라기보다 서러움과 억울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 같았다.

유경이는 아무 말 없이 공원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걸어가는 유경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그때 유경이가 바닥에 있던 작은 돌을 집어 공원 앞에 주차해 둔 내 차를 향해 던졌다.

돌이 차에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한 밤공원에 울렸다.

나는 곧바로 유경이를 향해 뛰어갔다.

나는 유경이를 불렀다.

유경이는 걸음을 멈췄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녀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유경이를 안았다.
“유경아, 내가 미안해.”

유경이도 두 팔로 나를 꼭 안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흐느끼던 유경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내 편이 되어 줘야 하는 거잖아.”

그 한마디가 가슴 깊이 박혔다.

유경이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 갔다.

“나 제 때문에 너무 힘들어.”

“아무리 말해도 계속 저래.”

“너랑 결혼한다고 말해도 계속 연락하고, 연락하지 말라고 하면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집 앞에서도 기다리고.”

“난 너뿐인데.”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했다.

“정훈이는 처음에 그냥 잠깐 알고 지낸 친구였어.”

“그런데 내가 미대에 합격한 뒤부터 적극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어.”

“군대 가기 전에도 분명하게 말했어.”

“좋아하는 마음은 받아줄 수 없다고.”

“친구 이상은 될 수 없다고.”

“그런데도 계속 연락하고 그래.”

“나 너무 힘들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왜 유경이가 그렇게 화를 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정훈이의 입장도 들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유경이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잠시 뒤 
유경이에게 "내가 말 잘 해 볼께 유경아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차문을 열어주고 유경이가 조수석에 앉는 것을 보고 문을 닫아 주었다. 유경이는 차문을 잠궜다.

 나는 다시 공원으로 돌아갔다.

정훈씨는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정훈씨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유경이는 나쁜 애입니다.”

“저는 군대에서도 유경이를 계속 생각했고, 휴가를 나올때 마다 연락했어요.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언젠가 달라질 거라고 믿으면서요.”

“그런데 결국 아니었어요.”

그의 말에는 원망보다는 오랫동안 품어 온 미련과 실망이 더 크게 담겨 있었다.

나는 정훈씨를 바라보았다.

정훈씨는 나보다 훨씬 어렸고, 겉으로 보기에는 순하고 착한 학생이었다. 예의도 바르고 말투도 공손했다. 누가 보더라도 바르게 자란 사람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정훈 씨와 마주 앉아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훈 씨가 유경이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는 아름답고 소중 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사랑은 내 마음으로 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도 함께 존중할 때 비로소 사랑이 된다고 생각해요.
유경이는 여러 번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했어요. 그런데 계속 연락하거나 학교 앞과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정훈 씨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유경이를 두렵고 힘들게 만들 수도 있어요. 저는 정훈 씨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어요.
유경이가 많이 힘들어해요. 정훈 씨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겠지만,  정말 유경이를 사랑하신다면, 이제는 유경이가 편하게 웃을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해요.  비록 유경이 곁에 정훈 씨가 없더라도, 유경이가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유경이를 많이 사랑합니다. 여러 번 헤어지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이제 정말 끝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서로를 잊지 못해서 결국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훈 씨 마음도 얼마나 힘들지 압니다. 하지만 유경이가 선택한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번만은 유경이 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훈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훈 씨는 조용히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유경이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 유경이가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정훈씨가 머뭇 거렸다.
"저는 형제가 없습니다."
"혹시... 제가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래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정훈 씨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잠시후 정훈씨가 일어섯다 
정훈씨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저 가볼께요. 유경이 잠깐 얼굴만 보고 갈께요"
"예"
정훈씨는 내차로 가서 차문을 열고 유경이와 짧게 말을 하고, 떠났다. 
유경이 얼굴도 한결 편해보였다. 
우리는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경이는 내 어깨에 기대어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고맙고. 사랑해.”라고 말하며. 내손을 꼭잡았다. 나도 유경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유경이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의 기억은 유경이의 힘들었던 모습과 함께 아직도 내 가슴 한켠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기억은 단순히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지금도 잊히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