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재 유경이가 말했다.
“내일 실기실 구경시켜 줄께 수업끝나고 학교로와.”
평소 미대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던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수업끝나고 유경이 학교로 갔다.
유경이가 다니는 학교는 미대가 유명한 곳 이었다. 캠퍼스가 작은 편이어서 정문에서 천천히 걸어도 학교 끝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만큼 아담한 규모였다. 화려하거나 웅장한 캠퍼스는 아니었지만, 학교 곳곳에는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특히 예술계열 건물이 있는 구역은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품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캠퍼스를 걸었다. 건물 앞에는 커다란 화구 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보였고, 물감이 묻은 앞치마를 손에 든 학생들도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유경이는 몇몇 과동기들과 간단한 눈인사를 나누는 것 같았다. 실기실이 다가 올 수록 물감과 종이, 나무가 섞인 특유의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복도에는 학생들의 작품이 벽을 따라 세워져 있었다. 완성된 작품도 있었고, 아직 마르지 않은 그림도 있었다. 작은 전시회를 둘러보는 기분이었다.
유경이는 복도 끝으로 걸어가 한 실기실 문을 열었다.
“들어와.”
실기실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커다란 창문으로 오후 햇살이 길게 들어오고 있었고, 창가를 따라 이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오랜 시간 떨어진 물감 자국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작업대 위에는 붓과 팔레트, 스케치북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은 실기 수업이 없어서 사람은 없었지만, 방금 전까지 누군가 작업을 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은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팔레트에는 아직 굳지 않은 물감이 남아 있었고, 물통에는 붓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캔버스 몇 점은 이젤 위에 올려진 채 다음 작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다들 끝났나 봐.”
“응. 오늘은 작업이 없어.”
오히려 사람이 없어서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나는 이젤 사이를 걸으며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캔버스에는 붓질의 결이 그대로 살아 있었고, 두껍게 올린 물감은 빛을 받아 입체적으로 보였다.
한쪽 벽에는 석고상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사람의 두상과 손, 발 모형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옆에는 학생들이 연습했던 드로잉들이 쌓여 있었다.
“여기서 계속 그림을 그리는 거야?”
“응. 과제할 때는 하루 종일 있기도 해.”
유경이는 자신의 자리를 가리켰다.
이젤 옆에는 오래 사용한 붓들이 꽂혀 있었고, 팔레트에는 수없이 많은 색이 겹쳐 굳어 있었다. 앞치마에는 오래된 물감 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그 흔적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실기실 한가운데에 잠시 서서 공간을 둘러보았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조용한 적막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고민하고, 지우고, 다시 그렸을 시간을 떠올리니 공간 자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창밖으로 기울어가는 햇살이 실기실 바닥을 길게 비추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https://youtube.com/shorts/OSGzrpDKnSQ?si=t1muvyckdk6tYeyf
perfect du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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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에 방문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조용한 실기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사람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그곳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열정과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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