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이를 보고 있으면 가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누군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까지 해쳐가며 집요하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문득 깨닫게 된다. 내가 안쓰럽게 바라보는 그 모습이 사실은 오래전 나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좋아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친구들과 뛰어놀기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만들기를 시작했다. 종이와 풀, 나무 조각, 전선, 고장 난 장난감, 심지어 버려진 전자제품까지 내게는 모두 훌륭한 재료였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기에 빠져들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만들기를 시작하면 저녁이 되어도, 밤이 되어도 손을 놓지 못했다. 숙제는 늘 뒷전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여러 번 화를 내셨다.
“숙제부터 하고 놀아야지!”
하지만 어린 내게는 만들기가 놀이가 아니었다. 그건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공부였고, 가장 즐거운 탐험이었다. 결국 밤늦게까지 만들기를 하다가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고서야 허겁지겁 숙제를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전자제품으로 옮겨갔다. 특히 진공관은 내게 신비로운 존재였다. 유리관 속에서 불빛이 은은하게 빛나며 전기를 증폭시킨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했다.
어느 날은 집에 있던 라디오를 몰래 분해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사는 쉽게 풀렸고 뚜껑도 금방 열렸다. 문제는 다시 조립하는 것이었다. 분해는 쉬웠지만 조립은 어려웠다. 결국 라디오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당시 아버지는 라디오를 아끼셨기 때문에 고장이 난 사실을 알게 되면 크게 혼날 것이 분명했다. 어린 나는 잔뜩 겁을 먹고 동네 전파사를 찾아갔다.
전파사 아저씨는 내가 들고 간 라디오를 한참 살펴보시더니 웃으셨다.
“네가 뜯어봤구나?”
나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별말 없이 라디오를 고쳐 주셨다. 수리비를 드릴 돈도 없었던 나는 문방구에서 사 온 크림빵 하나를 건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이야기지만, 당시의 내게는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웃으시며 그 크림빵을 받아 주셨고, 나는 무사히 라디오를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덕분에 아버지께 크게 혼나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그 전파사 아저씨가 생각난다. 아마 그분은 단순히 라디오를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호기심 많은 한 아이의 꿈을 지켜 주셨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대학 진학을 앞두게 되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았던 날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였다.
많은 사람들은 시험과 과제에 치여 힘들었다고 이야기하지만, 내게 학교는 놀이터와도 같았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길이 즐거웠고 강의실에 앉아 교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행복했다.
특히 한 교수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교재를 거의 펼치지 않으셨다. 대신 전자공학의 원리를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설명하셨다. 어려운 반도체 이론도, 전자기학도, 회로이론도 모두 살아 있는 이야기로 들려주셨다.

어떤 날은 한 가지 원리에 대해서만 세 시간 가까이 설명하셨다. 수학 공식은 잠깐 칠판에 적고 지나가셨지만, 왜 그런 공식이 필요한지, 자연 속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식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셨다.
물론 수학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결국 공식은 우리가 직접 풀어야 했고 과제로 제출해야 했다. 밤을 새워 계산하고 증명해야 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공식을 외우는 것보다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전류가 흐르는 이유, 전자가 움직이는 이유, 증폭기가 동작하는 이유, 전파가 공간을 통해 전달되는 이유를 배우는 시간은 내게 세상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과 같았다.
그래서인지 4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입학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유경이를 보며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유경이는 그림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걸 만큼 사랑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언젠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미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프랑스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해외 유학을 가는 것이 하나의 꿈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꿈을 위해 그녀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3년 동안 입시를 준비했다고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한 뒤 다시 그림을 그리는 삶을 몇 년씩 이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경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쳐도 그렸고, 힘들어도 그렸다.
몸이 아파도 그림을 놓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가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 쉬어도 되는데.”
“건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왜 그렇게 포기하지 못하는지.
왜 몸이 힘들어도 계속 붓을 드는지.
왜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고집을 부리는지.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만들기를 하던 아이.
라디오를 뜯어보다 고장 내던 소년.
전자공학 교과서를 품에 안고 행복해하던 대학생.
그 모든 순간의 나는 누가 말려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유경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평생 놓지 못할 만큼 사랑하는 것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축복이면서도 때로는 짐이 된다.
좋아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들어진다.
그래서 유경이를 보면 안쓰럽고 애처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부럽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가슴 뛰게 만드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같은 종류의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전자공학을 사랑했고, 유경이는 그림을 사랑했다.
대상은 달랐지만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유경이가 밤늦게까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볼 때면 걱정이 되면서도 쉽게 말리지 못한다.
그 모습 속에서 오래전 전파사 앞에 서 있던 어린 나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지금의 나에게 묻는 것 같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위해 애쓰는 게 그렇게 안쓰러운 일인가요?”
그 질문에 나는 아직도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결국 나는 늘 무언가에 미쳐 있었고, 유경이 역시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걱정과 응원을 함께 품은 채 그녀를 바라본다.
마치 오래전의 나 자신을 바라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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