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은 지금처럼 인터넷이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오기 전의 시대였다.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전화선에 모뎀을 연결해야 했다. “삐이익~ 끼이익~” 하는 특유의 접속음이 들린 뒤에야 비로소 통신망에 연결될 수 있었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오면 접속이 끊어지기도 했고, 통신요금도 만만치 않아 오래 접속해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당시에는 KT의 하이텔(한국경제신문의 케텔) 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천리안과 나우누리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한 곳은 하이텔이었다. 그 무렵에는 데이콤(DACOM) 같은 네트워크 회사들이 등장하며 국내 정보통신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지금처럼 웹브라우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터미널 프로그램을 이용해 게시판에 접속하고 정보를 주고받았다. 경북대학교 동아리 하늘소에서 만든 터미널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고 무료로 배포되었다. 서울대학교 컴퓨터연구회에서 개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 도스 버전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또한 Mdir 같은 폴더 관리 프로그램, V3 백신 프로그램 등 수많은 국산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어 무료로 배포되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흥미로운 시대였다. 인터넷은 분명 존재했지만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메일도 널리 사용되지 않았고, 스마트폰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카카오톡은 물론 문자메시지조차 흔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거나 긴 이야기를 보내고 싶다면 결국 편지를 써야 했다.
그래서 나는 유경이에게 종종 편지를 보냈다.
어느 날 하이텔 게시판에서 읽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읽는 내내 웃음이 나와서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지금 같으면 카카오톡으로 링크 하나 보내면 끝났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방법이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이야기를 편지지에 정성스럽게 옮겨 적었다.

며칠 뒤 유경이한테 전화가 왔다.
편지를 읽다가 너무 웃었다는 내용이었다.
소희와 같이 편지를 읽다가 웃음이 터져서 한참을 낄낄거렸고, 옆에서 보시던 엄마도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하셔서 함께 읽어 보셨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유경이 어머님도 무척 재미있어하셨다고 한다.
“참 재밋는 친구네.”
하면서 여러 번 웃으셨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지금처럼 좋아요 버튼 하나 누르거나 웃는 이모티콘 하나 보내는 시대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재미있었다는 말을 전하려면 편지를 써야 했고, 그 편지가 도착하기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다림이 싫지 않았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나면 며칠 뒤 어떤 반응이 올지 상상하게 되었고, 답장이 오면 봉투를 뜯기 전부터 괜히 설레곤 했다.
지금은 몇 초 만에 사진과 동영상이 전송되고, 언제든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분명 편리해졌지만 가끔은 그 시절의 느린 기다림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모뎀 소리가 울리던 밤.
하이텔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재미있는 글을 읽던 시간.
그리고 그 이야기를 편지에 옮겨 적어 유경이에게 보내던 기억.
유경이가 웃었고, 동생 소희도 재미있어했으며, 어머님까지 함께 웃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뿌듯함은 지금도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빠르게 오가는 디지털 메시지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종이 편지만이 전해 줄 수 있었던 따뜻한 정과 여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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