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경과 광화문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 장소는 광화문 크라운 베이커리 앞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이라 광화문 거리는 한산했다. 직장인들이 식당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던 시간은 지나 있었고, 거리에는 여유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초여름 햇살이 건물 사이로 부드럽게 비치고 있었고, 바람도 기분 좋게 불고 있었다.
크라운 베이커리 앞에 도착하니 유경이 먼저 와 있었다.
미대 2학년이었던 유경은 어깨에 가방을 메고 서서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유경은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왔네.”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왔어.”

우리는 광화문 뒤편 골목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골목은 한결 조용했다. 식당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직장인들로 붐비던 분위기도 한풀 꺾여 있었다.
걷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림 이야기를 할 때면 유경의 눈빛은 늘 진지했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즐거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골목 안쪽에 있는 한식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경이 말했다.
“여기 괜찮을 것 같은데?”
“좋네.”
우리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나 손님은 많지 않았다.
창가 쪽 조용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메뉴판을 펼쳤다.
“갈비탕 주세요.”
“저는 돌솥비빔밥이요.”
주문을 마친 뒤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광화문의 오후는 여유로웠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도 없었고, 골목길에는 차분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내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비탕이 놓였다.
진한 국물 향이 올라왔다.
그리고 유경 앞에는 뜨거운 돌솥비빔밥이 놓였다.
돌솥에서는 지글지글 소리가 났다.
참기름 향도 함께 퍼졌다.
유경은 돌솥비빔밥을 보자마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와, 맛있겠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며 말했다.
“나는 돌솥 같은 이런 게 맛있더라.”
“그래?”
“응.”
“난 처음 알았네.”
유경이 웃으며 물었다.
“뭘?”
“난 너는 양식 좋아하는 줄 알았어.”
유경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난 네가 파스타 같은거 좋아하는 줄 알았지..”
유경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파스타도 좋아하는데 돌솥도 좋아해.ㅋㅋ”
그리고 돌솥비빔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고추장과 나물, 계란이 섞이며 먹음직스러운 색으로 변해 갔다.
“나는 원래 이런 한식 좋아해.”
“그랬구나.”
“오히려 이런 게 더 좋은 것 같아.”
유경은 한 숟가락을 먹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맛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1년을 만나면서 돌솥비빔밥을 먹어 본적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처럼 느껴졌다.
유경은 다시 말했다.
“돌솥은 끝까지 따뜻해서 좋아.”
그리고 숟가락으로 돌솥 바닥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나중에 누룽지 생기는 것도 좋고.”
그 말을 하는 표정이 무척 즐거워 보였다.
미술 이야기나 과제 이야기를 할 때의 진지한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갈비탕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깊고 진한 맛이 좋았다.
유경이 물었다.
“갈비탕 맛있어?”
“응. 괜찮아.”
“먹어볼께.”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음식을 조금씩 맛보았다.
유경은 갈비탕 국물을 먹고 말했다.
“국물이 진하다.”
나는 돌솥비빔밥을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진짜 맛있네.”
유경은 마치 자신이 칭찬받은 것처럼 웃었다.
창밖으로는 한산한 광화문의 오후가 이어지고 있었다.
식당 안도 조용했고, 우리는 천천히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평범한 점심 한 끼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의외로 이런 평범한 순간들이다.
광화문의 조용한 골목.
창가 자리.
갈비탕 한 그릇과 돌솥비빔밥 한 그릇.
그리고 웃으며 말하던 유경의 한마디.
“나는 돌솥 같은 이런 게 맛있더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유경에 대해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세련된 카페와 양식도 좋아하겠지만, 뜨거운 돌솥비빔밥과 누룽지를 더 좋아하는 사람.
작품 이야기를 할 때는 진지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면 환하게 웃는 사람.
그날의 점심은 그런 유경의 모습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광화문의 따뜻한 오후 햇살 아래에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소하고도 행복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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