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경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 장소는 광화문이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유경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경이었다.
언제 보아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웃음이 지어졌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함께 차에 올랐다.
그날의 목적지는 강남 논현동에 있는 중화요릿집 중국성이었다.
중국성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친동생처럼 가깝게 지내던 한 여동생 때문이었다. 그녀는 YMCA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늘 나를 친오빠처럼 대해 주었다. 혈연관계는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믿으며 지내다 보니 진짜 남매 같은 정이 생겼다.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말했다.
“오빠, 논현동에 중국성이라는 곳이 있는데 한번 가보세요. 분위기도 좋고 음식도 맛있어요.”
그 말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유경은 그 여동생을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끔 그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존재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오늘 가는 곳이 그 동생이 추천해 준 곳이야?”
유경이 조수석에서 물었다.
“응. 한번 가보라고 하더라고.”
“그럼 기대되는데.”
유경은 창밖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광화문을 출발한 차는 한강을 건너 강남으로 향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 편리한 시대도 아니었다. 길을 확인하며 운전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차 안에서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프랑스 유학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유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시간이 유난히 빨리 흘렀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 주었고, 가끔은 내가 미처 말하지 않은 마음까지 알아차리곤 했다.
나는 그런 유경이 좋았다.
단순히 예뻐서가 아니었다.
함께 있으면 편안했고, 자연스러웠고, 무엇보다 행복했다.
논현동에 도착하자 멀리서도 중국성의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주차장과 웅장한 건물은 처음 보는 사람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와, 생각보다 엄청 큰데?”
유경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을 바라보니 마치 작은 중국 거리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나란히 걸어 입구로 향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중국풍 장식들이 눈길을 끌었다. 커다란 조형물과 화려한 장식들, 그리고 수족관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까지 모든 것이 당시로서는 꽤 인상적이었다.
유경은 주변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도 유경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직원이 안내한 자리에 앉아 메뉴를 펼쳤다.

“뭐 먹고 싶어?”
내가 물었다.
“네가 골라.”
“아니, 오늘은 유경이 먹고 싶은 걸로.”
유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샥스핀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짜장면.
주문을 마치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변 테이블에서는 가족 단위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친구들끼리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 속에서 우리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후 음식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요리들이 식탁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서로 음식을 덜어주며 식사를 시작했다.

“이거 정말 맛있다.”
유경이 말했다.
“그럼 많이 먹어.”
나는 그녀의 접시에 음식을 올려주었다.
유경은 웃으며 말했다.
“너는 꼭 내가 많이 먹게 만든다.”
“맛있는 건 많이 먹어야지.”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참 좋았다.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비싼 선물이 없어도 괜찮았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잠시 건물 안을 둘러보았다.
수족관 앞에 서서 물고기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화려한 장식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 시절은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였다.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지금보다 훨씬 소중했다.
그래서 눈으로 더 많이 담으려고 했다.
유경이 웃는 모습.

수족관 앞에 서 있는 모습.
중국풍 장식 앞에서 신기한 표정을 짓는 모습.
그 모든 순간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싶었다.
어느새 저녁 시간이 깊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건물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유경의 손을 잡았다.
유경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 짧은 순간이 참 따뜻했다.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이런 행동 속에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함께 걷는 것.
손을 잡는 것.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것.
그리고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
그날 논현동 중국성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외식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낸 하루였고, 평범하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이었다.
세월이 흘러 거리의 모습은 변하고, 건물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광화문에서 유경을 만나 함께 차를 타고 논현동으로 향했던 시간, 중국성에서 마주 앉아 웃으며 식사했던 모습, 그리고 주차장을 걸으며 손을 맞잡았던 순간만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날의 중국성은 단순한 중화요릿집이 아니라, 유경과 함께한 행복한 추억이 담긴 특별한 장소였다. 그리고 그 추억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내 마음속에서 따뜻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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